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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를 잊은 크리스찬에게는 미래가없다. 마틴루터의 종교개혁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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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터가 수도사가 된 데에는 이런 하나님 마음에 들려고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래서 사랑, 소박, 자선, 정절, 가난, 순종, 금식, 철야, 그리고 육신의 극기까지도 포함해서, 하나님 마음에 들 수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인간이 자신을 구원하는 데에 필요하다고 여기는 일이라면, 최대한 실천하고자 하였다. 그는 고해성사에도 열심히 참여하였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어떤 때는 내리 여섯 시간을 고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것으로는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다. 이런 일에 몰두하면 몰두할수록 자신은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이 느껴졌고, 그런 죄인에게 한치도 양보하지 않고 요구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뿐이었다. 이런 내적, 신앙적 갈등이 너무 컸기에, 그는 마침내 다음과 같이 절규하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나는 그 분을 오히려 증오한다."


          그런 루터에게 수도원 원장이자, 그의 영적인 동반자였던 스승 쉬타우피츠는 여러 가지로 조언도 하고 도움도 주었다. 그래도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빗텐베르크 대학교에서 성서를 가르치라고 루터에게 제안하였다. 자신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해 쩔쩔매는 루터에게 그런 제안은 너무 파격적이었다. 그는 여러 번 사양한 끝에 마침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1508년, 26세). 그리고 다른 이를 가르치기 위하여 비로소 로마서와 시편을 자세하게 읽기 시작하였다. 성서를 진지하게 연구하면서부터 루터는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하였다. 루터는 말한다:


              "바울의 로마서를 이해하려고 몹시 애쓰는 나에게는 커다란 장애물이 있었다. 곧 '하나님의 의(義)라는 말을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분이요 따라서 불의한 사람들을 공정하게 처벌하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나에게 하나님 은총과 구원은 설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내 상황을 말하자면, 수도사로서는 털끝만큼도 흠 잡을 데가 없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여전히 마음이 괴로운 죄인이었다. 내 업적으로는 절대로 그 분의 진노를 누그러뜨릴 자신이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공정하고 성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증오하고 그 분에게 투덜대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나는 바울을 붙잡고 늘어지면서 그의 말에 무슨 뜻이 담겨 있을까하고 계속 캐어보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곰곰이 생각하던 어느 날 나는 하나님의 의(義)와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는 말 사이에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 나는 하나님의 의(義)란 하나님께서 은혜와 순수한 자비를 발휘하신 나머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에게 죄가 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그 의 (righteousness)라는 사실을 터득하였다.


               그 순간! 나는 새로 태어나서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낙원에 이른 기분이었다. 성서전체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으며, 이전에는 '하나님의 정의'  때문에 괴로웠으며, 내 마음속에 증오심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내게 소중하게 여겨졌으며,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더 큰 사랑을 불러 일으켰다. 바울 서신의 이 대목이 나에게는 하늘로 통하는 하나의 관문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구세주시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믿는 순간, 우리 곁에는 은혜로운 하나님이 서 계신다. 이 믿음은 우리를 데리고 들어가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활짝 열어 제치고, 우리에게 순수한 은혜와 넘치는 사랑을 보게 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뵙는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더 이상 노여움이나 불친절을 찾아 볼 수 없는 그 분의 아버지 같은 마음, 다정한 마음을 우리가 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성난 분으로 보는 사람은 그 분을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 분의 얼굴에 검은 구름이 덮였을 때처럼 하나의 커튼을 대하고 있을 뿐이다."


          다마스커스로 가던 사울에게 갑자기 비추어진 빛이 그를 바울로 변화시켜 새로운 역사를 일구어 냈듯이, 천둥번개로 시작된 빛은 말씀을 새롭게 깨닫는 빛으로 이렇게 루터에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500여년 전 그에게 비추어진 빛은 단지 루터 한 사람만 변화시키지 않았다. 여기서 일어난 한 인간의  변화가 그 당시 사람들과 교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데로 이어지고, 인간의 역사와 미래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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